조선시대 해양유민의 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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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26 11:5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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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자연재해가 겹치게 되어 제주도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였던제주인들은, 그 결과로 제주도를 떠나 유민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도둑과 거지가 없다는 삼무는 범죄가 없다는 뜻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주도는 현대 이르기 전까지는 항상 가난한 섬에 속해 있었다. 결국 가定義(정이) 생계를 책임을 지는 것이 주로 여성이라는 뜻인데 그 많은 남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라는 것이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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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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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해양유민의 사회사



조선시대 해양유민의 사회사
그런데 이 책은 15세기~17세기 기간에 제주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제주도를 떠나 유랑하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따 과연 무엇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두고 떠나간 것일까? 저자는 여기에서 중앙government 의 규제와 말 산업에 있다고 說明(설명) 한다. 이는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육지와 떨어져있는 섬은 확실히 큰 발전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삼다, 삼무라는 평화적 슬로건을 가진 제주도지만 그 원인(原因)에는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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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제주도를 삼다, 삼무의 섬이라고 한다. 본래 조선시대 중앙government 에게 제주도는 같은 한민족이라는 인식도 부족했다. 삼다라는 것은 여자, 돌, 바람이 많다는 것이고 삼무라 함은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부유하고 누군가 가난하는 둥 빈부격차가 생기게되면 도둑이 나타날법 하지만 제주도는 누구나 가난했기 때문에 서로 훔쳐갈 것이 없어 도둑이 없다는 것이다. 말에 대한 자유교역이 통제당하게 되자 제주도는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거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거지와 마찬가지였다고도 한다.
제주를 떠나게 된 제주인들은 주로 배에서 생활을 하는 모습이 보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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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돌과 바람은 지형적인 특성(特性)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지만, 여자가 많다는 것은 제주도에 남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책 내용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사실 가장 놀란것은 이런 제주유민들이 임진왜란때 큰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본래 제주도는 농업으로는 취약한 땅이기 때문에 이 마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잘못을 저지른 관료들의 유배지로 많이 보내졌던 곳이 제주도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의 수군과도 관계를 가지는 둥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산업이 번성하게되자 제주로 어느정도 인구가 유입되기도 하였고 점차 안정된 모습을 찾아가나 싶었다. 현재도 제주도는 조랑말로 유명한 마산업지방인데 예전 고려시대때 몽골에 의해 공격당하고 나서 말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삼다삼무를 보고 제주도를 평화의 섬이라고 한다. 바로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때 같이 왜적을 상대로 해전을 벌인 것인데 이들은 배 조종술은 물론이고 물길에도 굉장히 밝기 때문에 전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는 좋은 모습만이 숨겨져 있는 것만은 아닐것이다. 허나 왜적의 습격을 바다 왜군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중앙government 의 강력한 규제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게된 제주도민들은 살아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선시대 이후 중앙 government 집권세력에서 이를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