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 왕건정권의 연속성에 관한 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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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06-1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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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까…(drop)
다. 궁예가 국호를 고려라 한 것은 고구려 계승의식을 표명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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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왕건정권의 연속성에 관한 논거



궁예 왕건정권의 연속성에 관한 논거
순서
궁예 왕건정권의 연속성에 관한 논거
(왕건이 궁예의 계승자라는 논거)
왕건은 정책면에서는 반궁예라고 歷史(역사)는 전해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궁예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호족정책이라든지 정책면에서의 差別성은 찾아볼 수 있으나 왕건이 궁예를 계승하였다는 歷史(역사)적 진실 또한 존재한다. 즉 이러한 국호의 선정은 궁예의 자주적이고 거대한 포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라는 소극적 지역관념을 가진 국호는 확대된 영토의 지역적 特性(특성) 및 정서를 다 포함하기에는 무리가 따랐고 궁예는 고구려 계승의식을 포함하면서도 이러한 확대된 영토의 지역적 特性(특성)과 정서를 포괄하기 위해 포괄적이고 상정적인 의미를 가진 마진, 태봉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歷史(역사)적 진실에 마주향하여 언급하여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국호를 변경할 시기에는 강역이 넓어져서 신라지역의 일부는 물론이고 백제의 중심부였던 공주 등 금강 일대의 지역이 궁예의 국토에 포함되었으며 전라도의 서남해지역도 역시 궁예의 판도 포함되는 실정이었다.
-첫째. 국호의 계승
왕건과 궁예는 동일한 국호를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왕건은 궁예를 축출하고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고 궁예는 처음에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그 후 마진과 태봉으로 바꾸긴 하였지만 고구려 계승의식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마진과 태봉은 포괄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고구려 계승의식을 기반으로 한 천하 중심으로서의 대동방국과 천하통일이라는 가치를 내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궁예가 이러한 국호변경을 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자면 궁예가 국가를 처음 설립하였을 때 고구려의 고토라고 할 정도의 한강과 임진강의 북쪽의 대부분이 강역에 해당하는 국토를 가지고 있었다. 분명 궁예는 마진, 태봉이라는 국호를 바꾸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국호의 계승은 궁예에 대한 계승이라고 표현할수있다
그 이유는 그 시대적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