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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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4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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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의 큰 형인 영왕이 오도현의 그림을 극히 좋아하여 특명으로 우관 벼슬을 주었다. 그의 회화는 귀족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감동케 하는 대중성을 띠었고 필선 하나 하나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게 …(省略)
당중기의 회화의 주류인 산수화에 관하여 설명했습니다. 오도현은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는데 노릉가, 양정광, 장장, 왕내아, 장애아 등이 모두 그의 제자였다. 그리고 오도현은 여러 제자들과 합작품도 남겼는데, 이러한 합작품은 수, 당대부터 유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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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중기의 회화의 주류인 산수화에 관하여 說明(설명) 했습니다.
2. 오도현의 도석인물화와 수묵산수화
오도현(690~760)은 호가 도자이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자기의 천재적인 재질에 의하여 당대 화단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 또 장안의 경운사에 <지옥도>를 그렸는데 화제가 살생을 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가서 인과응보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당대의미술사 , 당대의 미술사예체능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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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다.
그의 화력을 살펴 보면 소년시절엔 사찰의 벽화공으로 있었고 현종 때인 20세 무렵에는 당조의 중신인 소요공의 가신이 되었다.
오도현은 주로 사찰의 벽화를 많이 그렸는데 일생동안 300여 개소의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실로 오도현은 당대 제일의 벽화가였다. 오도현은 회화의 신묘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 후 그는 쇠주의 하구현에 가서 잠시 있다가 곧 동부 낙양에 와서 사찰 벽화에 전심하였다. 흥선사, 자은사, 자성사, 흥광사, 보제사, 경공사, 안국사, 영수사, 천복사, 은국사, 자대사, 경운사, 보살사, 복선사, 천궁사, 장수사, 경애사, 홍도관 등에 모두 오도현의 벽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화단에 알려져 개원년간(713~741)에 현종이 그의 이름을 듣고 특별히 명하여 궁정화가가 되게 하여 이후 오도현은 장안의 화단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장안 사람들은 오도현을 「화성」이라고 불렀다. 그는 일찌기 흥선사의 문에다 문신을 그렸는데 그림속의 신상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장안 사람들이 모두 몰려들었다고 한다. 작품의 인물들이 생동하는 것 같았으며 묘사법이 특출해서 장안의 도살자와 어부들이 보고 감동하여 그 업을 바꾸었다고 한다.